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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가 키운 영유아 발달지연...보험금 4년새 4배 폭증
언어·놀이·감각치료 실손보험 청구 급증
2022년 5대 손보사 보험금 1185억 지급
보험사, 비의료인 치료행위 심사 강화
부모·보험사·의료계, 보험금 갑론을박

#. 올해 초 A(39) 씨는 2018년생인 아들이 말이 느린 것 같아 고민하다 맘카페에서 알게 된 소아과를 찾았다. 병원에서는 언어검사 후 부설 발달센터에서 언어치료와 놀이치료를 받기를 권했다. 각각 회당 5만~6만원의 부담스러운 비용이었지만, 실손보험으로 처리가 가능하다는 말에 주 1~2회 꾸준히 치료를 받았다. 4개월 가량 치료를 진행한 A씨는 놀이치료는 더 이상 보험 청구를 할 수 없다는 보험사의 통보를 받고 고민에 빠졌다. 자비로 부담하기엔 비싼 비용 때문에 놀이치료를 포기 하려다가도, 발달지연 치료는 ‘장기전’이라는 주변의 말에 망설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기간에 영·유아 발달지연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주요 손해보험사들이 지급한 관련 보험금 규모가 4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비의료인의 치료 행위에 대한 심사 강화에 나선 보험사와 반발하는 발달지연 아동 부모 간에 갈등의 골이 점차 깊어지고 있다. 형사고소 및 집단소송 움직임으로도 번지면서 당분간 발달지연 보험금과 관련한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2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5대 손보사(삼성화재·DB손해보험·현대해상·KB손해보험·메리츠화재)가 발달지연(진단코드 R62·R47)과 관련해 지급한 실손보험금은 ▷2018년 200억원 ▷2019년 280억원 ▷2020년 388억원 ▷2021년 829억원 ▷2022년 1185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보험금 지급규모가 5년 사이 6배 가까이(491.7%) 폭증한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4배 이상(323.7%) 증가하는 등 코로나19 영향이 뚜렷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언어·인지발달 지연을 겪는 영·유아가 늘면서 관련 보험금 청구·지급 증가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급증세에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 심사 강화에 나섰다. 가장 먼서 문제 삼은 것은 의료행위 자격이다. 최근 발달지연 실손의료비 진료기록에 대한 확인 절차를 강화한 현대해상의 경우, 놀이치료사, 미술치료사, 음악치료사 등 민간치료사의 ‘불법의료행위’에 대해서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의료법에 따라 면허를 취득한 의료인이 직접 치료하는 의료행위와 민간자격자의 치료행위는 다르다는 게 보험사의 입장이다. 자격기본법은 국민의 생명·건강·안전에 직결되는 분야에 대해서는 민간자격을 운영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어, 질병 또는 상해로 인한 치료비를 보상하는 실손보험의 보장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부 병·의원에서 발달지연 아동 대상 재활센터를 별도로 운영하며 실손보험금 편취 수단으로 악용하는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 병·의원과 같은 건물에 언어치료, 감각통합치료 등을 위한 부설 아동발달센터를 두고 의사가 직접 진료한 것처럼 꾸며 보험금을 받는 경우가 많다. 회당 진료비용은 보통 5만~10만원으로 적잖은 수준이다. 최근 부산에서 이런 식으로 사무장병원을 운영해 19억여원의 보험금을 챙긴 사무장과 의사들이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이를 명백한 위법행위라고 본 한 대형 손보사는 4월 아동 발달지연 치료 의료기관 15곳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냈다. 의료기관에 대한 형사고소를 공동으로 진행하는 보험사들도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사무장이나 컨설팅업체가 봉직의를 두고 파트타임 상담사, 치료사를 쓰며 운영하거나, 소아과가 아닌 이비인후과가 부설센터를 차리기도 한다. 점점 기업형으로 진화되고 있다”며 “사실 상세불명의 발달지연에 붙는 R코드는 임시 코드임에도 R코드로 수년간 계속해서 청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반면, 발달지연 아동 부모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발달지연은 언어·대근육·소근육·사회성·자조 등에 대한 유기적 치료가 필수적인데도 보험사가 기본적인 이해 없이 보장을 줄였다고 비판한다. 관련 커뮤니티 등에는 “보험 처리가 안 돼 치료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느린 아이 키우기가 너무 힘들다”는 성토 글이 쏟아지고 있다. 보험사를 상대로 단체소송을 준비하는 움직임도 있다.

의료계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발달지연, 발달장애 아이들의 치료 과정에 전문인력이 있느냐, 아니냐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사례가 많아졌다”며 “보험사들이 보험금을 안 주려고 유리하게 약관을 해석하다 보니, 마치 무자격자가 상담한 것처럼 치부해 버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보험업계에서는 발달지연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는 일부 병·의원의 위법적 행태를 바로잡지 않으면 결국 피해는 선량한 실손보험 가입자, 발달지연 아동과 그 부모에게 돌아간다고 항변한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치료가 필요해서 정상적으로 치료를 받는 경우에는 당연히 보험금이 지급된다”며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이 치료사가 아닌 상담사와 놀이를 하고 비용을 지불하고, 정작 제대로 된 치료 시기를 놓칠 수 있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강승연 기자

sp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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