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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의 성공조건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 12일부터 본격 시행된다. 가입자나 근로자가 직접 운용하는 개인형 퇴직연금(IRP)제도나 확정기여(DC)형 제도의 디폴트 옵션 지정이 아직 완료되지 않아 이를 독려하기 위한 퇴직연금 금융회사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이 와중에 디폴트 옵션이 시행되면 퇴직연금 운용수익률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하지만 실제로 그 효과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정확한 이해와 지속적인 개선 노력이 요구된다.

디폴트 옵션은 오랜 논의와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됐다. 그간 디폴트 옵션상품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심사와 승인이 이뤄졌다. DC형의 경우 기업이 이를 퇴직연금 규약에 반영해 변경한 다음 가입자인 근로자들이 자신의 디폴트 옵션을 지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IRP는 가입자가 금융회사의 디폴트 옵션 가운데 하나를 지정해야 하는 과정이다. 그동안 정기예금과 같이 만기가 있는 금융상품의 경우 만기 이후에 가입자가 운용 지시를 하지 않아도 같은 상품이나 금리가 더 높은 같은 종류의 상품으로 자동 재예치됐다. 이는 운용 지시를 하지 않아서 ‘대기성 자금’으로 방치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였다.

12일 이후부터는 이러한 자동 재예치가 중단된다. 즉 금융상품의 만기가 지났는데 운용 지시를 하지 않으면 디폴트 옵션을 미리 지정한 가입자는 6주 이후 디폴트 옵션상품으로 가입되고, 그렇지 않은 가입자는 대기성 자금으로 분류된다. 자신의 퇴직연금이 대기성 자금이 되지 않길 바란다면 지금이라도 디폴트 옵션을 지정해야 할 것이다.

해외 디폴트 옵션과 달리 우리의 경우 이처럼 추가적으로 자신의 옵션을 한번은 정해야 하는 근로자의 자기 책임이 강하다. 따라서 엄격한 의미에서는 디폴트 옵션이라기보다는 우리 말인 ‘사전지정 운용제도’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본래 디폴트 옵션이란 ‘기본적인 선택’으로서 운용 지시를 하지 않은 가입자를 대신해 사전적으로 금융회사나 기업주가 지정한 상품으로 자동 가입되도록 하는 제도다. 그런데 우리는 의사 결정을 하지 않는 가입자를 위해 가입자 스스로 사전에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우리의 디폴트 옵션은 토착화되면서 변형돼 이른바 ‘K-디폴트 옵션’이라고도 불린다.

퇴직연금 운용은 가입자나 금융회사가 운용 목표에 맞는 자산 배분과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 과정이다. 디폴트 옵션은 자산 운용의 어려움이나 무관심 등으로 방치되는 경우를 보완하기 위한 장치다. 디폴트 옵션은 소극적인 가입자에게 맞는 기본적인 운용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디폴트 옵션의 목표수익률은 정기예금 금리보다 약간 높은 수준일 가능성이 크다. 가입자 개개인에게 맞는 적극적인 운용보다는 운용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만 그동안 방치된 자금으로 인해 저조했던 제도 전체의 운용 성과를 끌어올리는 데에는 어느 정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디폴트 옵션 도입 과정에서 정기예금과 같은 원리금 보장상품의 편입 여부를 놓고 논쟁이 뜨거웠다. 디폴트 옵션상품은 리스크 정도에 따라 초저위험, 저위험, 중위험, 고위험 등 4가지로 분류한다. 이 가운데 초저위험의 경우 은행 정기예금과 같은 원리금 보장상품으로만 구성돼 있다. 지난 3월 말 현재 3000억원의 디폴트 옵션 가입금액 중 80% 이상인 2500억원이 초저위험으로 몰렸다. 국내외 고금리 기조의 영향으로 아직까지 정기예금 금리가 연 3~4% 정도로 낮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위험 이상으로 펀드와 같은 투자상품이 편입될 경우 가입 절차가 한층 까다로운 점도 원리금 보장상품으로 몰리는 큰 이유가 되고 있다. 다만 은행 정기예금으로 디폴트 옵션을 선택한 가입자들이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이 상품들의 만기가 보통 3년 이상인데 중도에 다른 상품이나 옵션으로 바꿀 경우 약정했던 금리보다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점이다. 디폴트 옵션에 편입된 정기예금에 한해 중도 해지에 따른 패널티 조항을 삭제하려고 했지만 아직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만기 여부에 관계없이 언제든지 가입자가 자발적으로 디폴트 옵션을 골라 가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초기 단계의 일임 위탁상품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이런 탓에 일부 금융회사의 경우 하위 투자상품을 시장 상황에 따라 변경할 수 있는 재간접형 투자상품으로 디폴트 옵션상품을 개발하기도 했다. 향후 디폴트 옵션은 이러한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가능성이 있다.

끝으로 디폴트 옵션은 단기간 고수익보다는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성과를 지향하며 이를 가입자에게 명확하게 인식시켜야 한다. 불과 3개월, 6개월 단기 성과를 내세워 가입자를 현혹하는 것은 오히려 불신을 가중시키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

금융회사 간에 건전한 수익률 경쟁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하지만 단기간 고수익 경쟁에 나섰다가는 그만큼 큰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단속이 필요하다.

민주영 신영증권 연금사업부 이사·경영학(연금금융) 박사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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