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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이 우보주책 대표 “복원한 토종벼로 진짜 ‘K-술’ 8월 출시”
26일 오전 경기 양평군 우보주책 양조장에서 이근이 우보주책 대표가 막걸리 만드는 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새날기자.

[헤럴드경제=전새날(양평)·이정아 기자] “유명한 ‘이천쌀’도 일본 쌀을 개량해 만든 쌀입니다. 우리가 개량했으니 우리 쌀이라고 하는 거죠. 그런데 언제부터 임금님이 개량 벼를 먹었습니까. 전통주에 들어간 쌀도 똑같아요. 전통주라고는 하지만 주재료인 쌀의 99%가 일본 품종입니다.” (이근이 우보주책 대표)

토종벼 1451종, 일제 주도로 개량종으로 대체되며 점차 사라져
경기 양평군 우보주책에 전시된 토종벼 전새날 기자

토종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흔히 외래종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이근이 우보주책 대표가 생각하는 토종의 반대말은 다름 아닌 개량종이다. 이 대표는 토종을 “그 땅에 적응해 고정화된 것”이라고 정의했다. ‘고정됐다’는 말은 ‘변이가 일어나지 않고 똑같이 자란다’는 뜻이라고도 했다.

과거 각 지역의 문화·기후·토양에 맞게 다양하던 토종벼는 일제강점기와 1970년대 통일벼 보급 뒤로 자취를 감췄다. 일본 주도로 개량종 시대를 맞이하면서 국내에서는 일본 품종 벼를 심기 시작했다. 다만 일제는 한반도 전역에서 키워졌던 토종벼 품종 1451종을 다룬 책 ‘조선도품종일람’을 남겼다.

이 대표는 우리 땅에 고정화된 토종벼로 만든 쌀이 진정한 ‘우리 쌀’이라고 봤다. 2011년부터 벼농사를 시작한 그는 지난해까지 450종의 토종벼를 복원했다.

실제로 전통주에 들어가는 쌀에도 이 대표가 정의하는 우리 쌀은 거의 없다. 미국 수입 쌀이나 일본 원종으로 개량한 쌀 등으로 만든 전통주가 대다수다. 이 대표가 토종벼로 만든 진짜 ‘한국산’ 술을 만들게 된 이유다.

‘양조장 대표’ 된 농부 이근이 “농부·토종벼 상생 위한 결정”
26일 오후 경기 양평군 우보주책 양조장에서 ‘토종쌀 막걸리 워크숍’ 참가자들이 쌀에 누룩을 섞고 있다. 전새날 기자.

이 대표가 양조장을 운영해 보기로 결심한 것은 지난해다. 그는 준비 기간을 거쳐 4개월 전 경기 양평군 용문면에 양조장을 차렸다. 8월 중순에는 토종벼로 만든 막걸리를 국내 처음으로 출시할 예정이다.

평소에도 막걸리를 빚어 마시긴 했지만, 농사할 때 마시기 위한 농주(農酒)용이었다. 막걸리를 좋아해도 술을 만들어 파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이 대표는 국세청 허가를 받는 과정을 거치면서까지 양조장을 본격적으로 운영할 생각은 없었다. 이미 그가 농사를 지은 ‘토종쌀’은 자체적으로 전부 판매가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다른 양평군 농부의 상황은 달랐다. 쌀이 대량으로 남아, 소비할 곳을 찾아야 했다. 밥쌀로도 인지도가 낮은 토종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 현재 우리나라 토종벼 생산량은 약 40t을 웃돈다. 전체 쌀 생산량의 0.0001% 정도다. 그중 양평에서 150종가량의 토종벼 30t을 생산한다. 전체 토종벼 생산량의 75%나 된다.

소비자에게도 낯설고 생산량도 적다 보니 토종벼 가격은 자연스레 높아졌다. 이 대표는 “소농이 소비자에게 ㎏당 1만~1만2000원 정도를 받아야 적당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좋아하고 즐겨 마시던 막걸리로 눈을 돌렸다. 쌀 소비는 줄고 있지만 술 소비는 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비싼 주류에도 지갑을 여는 소비자가 있다는 사실도 놓치지 않았다. 그는 막걸리 제조에 대해 “농부로서 이 대표와 토종벼의 발전을 함께할 수 있는 상생을 위한 결정이었다”고 했다.

토종쌀이 가진 경쟁력…‘깊은 풍미’ ‘다양성’
막걸리의 주재료가 되는 토종쌀. 왼쪽부터 ‘녹두도’, ‘비단찰’, ‘아롱벼’, ‘앉은뱅이’ 품종의 벼로 만든 쌀밥의 모습이다. 전새날 기자.

토종벼는 유기농으로 키워 경제성은 낮다. 우리 농업은 1910년 이전 사람의 개입이 적은 순환체계로 이뤄졌다. 그 당시 재배된 토종벼는 스스로 지역 환경에 적응해 야생성이 강하다.

반면 토종벼는 현대에 사용되는 농약이나 화학 비료에는 약하다. 화학 비료를 뿌리는 순간 벼는 다 쓰러져 먹지 못하게 된다.

문제는 화학 비료를 쓰지 않으면 수확량은 줄어든다는 점이다. 유기농으로 키운 토종벼 수확량은 같은 조건에서 개량벼 수확량의 절반 수준이다.

이 대표는 낮은 경제성과 인지도에도 토종벼를 키우는 이유로 ‘경쟁력’을 꼽았다. 그는 “갈수록 기후위기처럼 환경이 변화무쌍하게 변한다. 이럴 때일수록 종 다양성이 중요해진다”며 “토종벼는 각자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잘 살린다면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했다.

찰지고 단맛이 나는 획일화된 개량벼와는 달리, 깊은 풍미를 가진 토종벼는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다. 품종별로 윤기, 향기, 찰기도 모두 다르다.

이 대표는 토종벼의 진가를 알아봐 주는 소비자가 분명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물론 일반 개량벼처럼 대중화는 쉽지 않겠지만, 토종벼를 원하는 소비층을 위한 다품종 소량 생산이 핵심”이라고 부연했다.

막걸리로 태어난 ‘토종벼’…“한국 전통주 오리지널, 무엇인지 보여줄 것”

이 대표의 토종벼로 만든 막걸리는 2개 라인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단일 품종으로 만든 프리미엄 막걸리와 다양한 토종벼를 혼합해 만든 농주용 막걸리다.

이 대표는 앞으로 해외 시장에 진정한 한국의 막걸리를 소개하고 싶다는 꿈도 갖고 있다. 그는 “막걸리나 청주 같은 전통 술을 외국에 자랑스럽게 내보이지 못하는 건 원재료인 ‘쌀’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라며 “우리 땅에서 우리가 키우던 쌀로 만든 술이어야 오리지널이구나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newday@heraldcorp.com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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