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진, 공산주의자에 암살·지청천, 반공통일연맹 활동
보훈부 “독립·광복군 흉상 철거·이전 지시 사실 아니다”
육사, 5년 전엔 “선배 전우들의 나라사랑 정신 기린다”
육군사관학교가 충무관 중앙현관 앞에 설치된 독립영웅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과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교내나 교외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지난 2018년 99돌 3·1절을 맞아 육사 충무관 앞에서 제막식을 가진 홍범도·지청천 장군, 이회영 선생, 이범석·김좌진 장군 흉상(왼쪽부터) [헤럴드DB] |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육군사관학교가 교내 충무관 중앙현관 앞에 세워진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철거해 교내외로 이전하기로 하면서 파문이 증폭되고 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독립·광복 영웅들에게 ‘공산주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해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육사 “자유민주주의·한미동맹 체감 환경 조성”=육사는 25일 “군의 역사와 전통을 기념하는 교내 다수의 기념물에 대해 재정비 사업을 추진중”이라며 “그중에서 생도들이 학습하는 건물 중앙현관 앞에 설치된 독립군·광복군 영웅 흉상은 위치의 적절성, 국난극복의 역사가 특정시기에 국한되는 문제 등에 대한 논란이 있다”고 밝혔다.
육사는 “이에 독립군·광복군 흉상을 다수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곳으로 이전하기 위해 최적의 장소를 검토중”이라며 “육사 교내에는 학교의 정체성과 설립 취지를 구현하고 자유민주주의 수호 및 한미동맹의 가치와 의의를 체감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데 중점을 두고 기념물 재정비 사업을 추진중”이라고 설명했다.
육사는 홍범도, 김좌진 장군 등의 흉상을 교내 내부는 물론 사실상 교내에서 철거해 외부로 이전하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육사 측이 독립기념관에 이들의 흉상을 옮겨 전시 또는 보관할 수 있겠느냐는 검토 요청을 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육사는 재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기존 밴 플리트 장군 동상이 있는 곳 일대를 한미동맹 기념공원으로 조성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다만 안중근 장군 동상을 비롯해 강재구 소령 동상이나 심일 소령 동상, 화랑상, 문무상, 국민교육헌장탑 등 다른 기념시설과 기념물은 그대로 둔다는 방침이다.
육사 관계자는 기념물 재정비 사업과 관련 “생도들이 학습하는 충무관 전체 복도와 로비 등에 고대부터 현대까지 국난극복의 역사 전체를 학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는 것도 검토중”이라면서 “그곳에는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그리고 독립군과 광복군, 6·25전쟁, 베트남 파병, 국지도발 대응작전, 해외파병 등 모든 역사가 포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생도들의 학습공간인 충무관 앞에 세워진 독립군·광복군 영웅 흉상을 학교의 정체성과 설립 취지 구현 등을 이유로 건립한 지 불과 5년 만에 이전한다는 점에서 비판이 제기된다.
육사 측이 독립군·광복군 영웅 흉상을 기존 위치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내세운 자유민주주의와 한미동맹 체감 환경 조성이라는 명분도 옹색하다는 평가다.
▶“尹정부, 독립전쟁 역사 훼손 만행 진상 밝혀야”=여천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회와 우당 이회영 기념사업회,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백야 김좌진 장군 기념사업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먼저 “멀쩡하게 세워진 독립전쟁 영웅들의 흉상을 육사 교정에서 철거하고 기념관으로 옮기라는 지시는 누구의 지시냐,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냐, 국방부 장관이냐, 국가보훈부 장관이냐, 아니면 더 윗선의 지시가 있었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이어 “독립전쟁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과 계승작업은 대한민국 헌법정신과 국군의 역사적 뿌리를 제대로 확립하는 일이며 반쪽짜리 우리 역사를 완성하는 일이기도 하다”면서 “김좌진, 홍범도, 지청천, 이범석 장군과 이회영 선생 다섯 분의 흉상을 육사에 건립한 것은 독립군과 광복군의 정신을 계승해 육사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함이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특히 “독립전쟁의 영웅 흉상을 철거하고 독립전쟁의 역사를 지우려는 윤석열 정부의 시도를 당장 멈추라”면서 “‘문재인 정부 지우기’를 하려다 ‘국군의 정통성’을 뿌리 채 뒤흔드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지 마길 바란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국가보훈부를 향해서는 “보훈부 승격은 환영받을 일이지만 이후의 행보는 참으로 우려스럽다”며 “독립정신 계승과 호국정신 발전이라는 본연의 역할보다 가짜 유공자 서훈 박탈 논란, 백선엽 장군 친일행적 삭제, 여운영 선생과 홍범도 장군 서훈을 문제 삼더니 이제는 독립전쟁 역사까지 부정한다는 의심이 든다”고 비판했다.
또 “윤석열 정부는 반헙법적 발상으로 독립전쟁의 역사를 훼손하려는 만행의 진상을 밝히고 국민께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다만 보훈부는 이날 “‘육사 내 독립군·광복군 흉상 철거 및 이전을 지시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면서 “보훈부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확인도 없는 일방적이고 터무니없는 주장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육사 관계자 역시 “재정비 사업은 학교 자체 기념물 재정비 계획에 따라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25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육사의 독립군·광복군 영웅 흉상 철거 및 이전 구상과 관련 “(육사는) 북한을 대상으로 전쟁을 억지하고 전시에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곳인데, 공산주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겠느냐는 지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연합] |
▶이종섭 국방 ‘공산주의 경력’ 언급 논란=이런 가운데 이 장관은 육사에 흉상이 세워진 독립·광복 영웅에게 ‘공산주의 경력이 있는 사람’으로 언급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관련 질의가 나오자 “(육사는) 북한을 대상으로 전쟁을 억지하고 전시에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곳”이라며 “공산주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겠느냐는 지적이 있었다”고 답변했다.
김좌진 장군은 공산주의자에게 암살당했으며, 지청천 장군은 대한민국반공통일연맹 최고위원을 지냈다.
대한민국 초대 국무총리와 국방부 장관을 역임한 이범석 장관이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인 이회영 선생 역시 공산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이 장관의 발언을 한때 소련 공산당에 입당한 것으로 알려진 홍범도 장군을 겨냥한 것이라고 국한하더라도 자유시 참변과 일본군의 출병으로 연해주 일대 항일무장투쟁세력이 사실상 궤멸당한 뒤 또 다시 스탈린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당할 수밖에 없었던 봉오동·청산리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삶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대상을 고려해 박정희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홍범도 장군에게 추서했고, 김영삼 정부부터 노력을 기울인 끝에 2021년 8월에야 유해를 고국으로 봉환해올 수 있었다.
심지어 해군은 손원일급(1800t급) 7번 잠수함에 홍범도 장군의 이름을 따 ‘홍범도함’(SS-079)으로 명명하고 운용중이기도 하다.
광복회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대한민국 자주국방의 요람 육사 교정을 늠름히 지키고 있는 5인의 독립유공자 흉상을 국방부가 합당한 이유 없이 철거를 시도한 것은 일제가 민족정기를 들어내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광복회는 사실상 이 장관을 향해 “이번 사태를 일으킨 주무 장관이 철거 계획 백지화를 국민들에게 밝히고, 혼란을 야기한 책임자를 찾아내 엄중 문책하기를 촉구한다”며 “동시에 독립유공자 흉상 철거를 시도한 주체와 배후인물들, 그리고 철거 시도 이유와 배경에 대해서도 국회 차원의 진상규명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지난 2016년 4월 HD현대중공업 울산 본사에서 열린 홍범도함 진수식 모습. [헤럴드DB] |
한편 홍범도, 김좌진 장군 등의 흉상은 지난 2018년 3월 1일 99돌 3·1절을 맞아 세워졌다.
흉상은 장병들이 사용한 5.56㎜ 소총 5만발 분량의 탄피 300㎏을 녹여 제작했다.
당시 육군은 실탄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상황에서 봉오동·청산리대첩 등 만주벌판에서 일본군을 대파하고 조국독립의 불씨를 타오르게 한 선배 전우들의 숭고한 나라사랑정신을 기리기 위해서라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흉상 중앙 표지석에는 ‘우리는 한국 독립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나가! 나가!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는 ‘압록강 행진곡’ 가사와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9주년을 맞이하여 후배장병들이 사용했던 탄피를 녹여 흉상을 만들어 세우다’는 생도들의 독립정신 계승 의지를 새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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