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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기업 억지로 삼성 대신 TSMC 선택” 이래서 ‘점유율 1%’ 오명 벗겠나 [K-파운드리가 미래다③]
팹리스 생태계 핵심 ‘멀티프로젝트웨이퍼’
삼성전자만 복수 테스트칩 지원하는 실정
TSMC MPW 지원 횟수 삼성 대비 4배나
“지원금 삼성에 집중 지원이 최대 급선무”
삼성 파운드리 [123rf, 삼성전자 제공]
〈시리즈를 시작하며〉

작년 한국이 1인당 GDP에서 18년 만에 대만에 추월당했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대만의 경제 성장을 이끈 것은 반도체 산업입니다. 그 중심에는 전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1위 기업 TSMC가 있습니다. 파운드리 분야에서 TSMC는 삼성전자에도 큰 산입니다. 파운드리 경쟁력 중요성이 커지면서 한국도 국가적으로 파운드리 키우기에 나섰습니다. 삼성전자를 필두로 한 ‘K-파운드리’가 한국의 미래인 셈입니다. 하지만 ‘K-파운드리’가 삼성전자 한 곳만 잘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TSMC 벽이 높은 이유는 이를 받쳐주는 ‘반도체 생태계’가 굳건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삼성과 함께 K-파운드리를 이끌고 있는 기업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삼성 중심의 K-파운드리 생태계의 특징과 개선점, 그리고 대안은 무엇일까요? [K-파운드리가 미래다]가 현장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제시해보고자 합니다.

[헤럴드경제=김민지·김지헌 기자] “영세한 국내 팹리스 기업들에게 정책 자금을 N분의 1해서 나눠주는 것보다, 삼성 파운드리에 대단위로 집중 지원하는 것이 국내 시스템 반도체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방안이다”(김녹원 딥엑스 대표)

AI 반도체를 포함한 시스템반도체 산업이 각광 받으면서, 그 근간으로 꼽히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산업을 부흥하기 위한 파격적인 제안이 나왔다. ‘글로벌 매출 점유율 1%’라는 초라한 한국 팹리스 산업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대대적인 지원 정책이 효과적이라는 지적이다.

팹리스는 시스템반도체 산업의 ‘두뇌’ 역할을 한다. 제조 분야를 담당하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산업이 발달돼 있더라도, 이곳에 수주를 맡길 고객사인 팹리스 기업이 없다면 탄탄한 시스템반도체 생태계가 조성될 수 없다.

업계 관계자들은 각자도생이 아닌 삼성 파운드리 중심의 생태계 강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칩 시제품을 제작해볼 수 있는 MPW(멀티 프로젝트 웨이퍼) 프로그램 횟수를 늘릴 수 있도록 삼성전자 중심의 생태계를 살찌워야 한다는 의미다.

“팹리스 생태계 활성화 첫발=삼성 파운드리 MPW 확대”

지난달 말 중소벤처기업부와 삼성전자는 ‘팹리스 챌린지’ 대회를 열고 유망 팹리스 스타트업 5곳을 선정했다. 올해 선정된 업체는 관악아날로그, 다모아텍, 보스반도체, 알파솔루션즈, 원세미콘 등이다. 팹리스 챌린지에 선정되면, 중기부로 부터 최대 1억원의 개발비용을 지급받을 수 있다.

지난달 29일 중소벤처기업부가 삼성전자와 공동으로 유망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기업을 선발해 지원하는 행사인 ‘팹리스 챌린지’에서 선정기업 대표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개발비 보다 더 중요한 혜택이 있다. 삼성전자의 MPW 프로그램을 지원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MPW란, 웨이퍼 한장에 여러개의 칩 설계물을 제작하는 과정이다. 팹리스 회사들이 각자의 설계도를 제출하면, 삼성 파운드리가 한장의 웨이퍼에 여러 회사들의 칩을 모아 만들어준다. 시제품을 만들어 설계를 검증할 수 있기 때문에 제품 상용화를 위해 꼭 필요한 단계로 꼽힌다. MPW 서비스가 없다면, 한장의 웨이퍼를 직접 팹리스 업체가 구매해 테스트 칩을 제작해야 한다. 여러 기업이 모여 한장의 웨이퍼를 구매해 칩을 새길 때보다 원가 부담이 급증, 자본력이 약한 팹리스들로서는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팹리스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출발점이 바로 삼성 파운드리의 MPW 프로그램 확대라고 입을 모은다.

김욱 알파솔루션즈 대표는 “팹리스 생태계가 선순환 구조를 이루려면 일단 삼성 파운드리가 제공하는 MPW 횟수가 늘어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며 “경쟁사 TSMC의 경우 전향적으로 MPW 횟수를 늘려 작은 팹리스 회사들과도 오랫동안 신뢰 관계를 구축해 잠재적 고객사를 늘려왔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MPW 지원 프로그램 스케줄 [삼성전자 홈페이지]

삼성전자는 올해 29회의 MPW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전년 대비 5회 늘렸다. 12인치 웨이퍼 17회, 8인치 웨이퍼 12회다. 내년에는 12인치 웨이퍼 18회, 8인치 웨이퍼 14회로 올해보다 10% 가량 늘려 총 32회를 지원한다.

그러나 아직 경쟁사 TSMC 보다는 부족하다. TSMC의 경우, 공정에 따라 매달 진행되는 MPW 프로그램이 대다수다. 업계 관계자들은 TSMC의 연간 MPW 지원 횟수가 약 120회로, 삼성 파운드리에 비해 3~4배 더 많다고 지적한다.

삼성 파운드리의 MPW 프로그램과 개발 일정이 맞지 않거나 특정 횟수에 지원 회사들이 몰릴 경우, 국내 팹리스 업체들도 어쩔 수 없이 TSMC 등 다른 글로벌 파운드리 기업에 시제품 제작을 맡기는 경우가 빈번하다. 중장기적으로 TSMC와 신뢰관계가 구축되면 삼성으로서는 잠재적 고객사를 뺏기는 셈이다. TSMC의 테스트칩 영향력은 막강하다. 심지어 삼성전자 안에서도 테스트칩을 TSMC에 맡길 정도다. 삼성 DX부문의 삼성리서치 등 연구소를 비롯해 삼성 자체 파운드리 역량으로 소화 못하는 물량은 TSMC에 위탁생산을 의뢰해 테스트를 진행한다.

끊을 수 없는 팹리스-파운드리…“선순환 위한 효율적 지원 정책 필요”

팹리스와 파운드리 회사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국내에 유망한 팹리스 회사가 많을수록 삼성 파운드리도 주요 고객사를 더욱 확보하고 물량을 늘릴 수 있다. 동시에 유망한 팹리스 회사가 늘어나기 위해서는 파운드리 회사가 MPW 프로그램을 더 자주 지원해 팹리스 회사들이 제품을 테스트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야 한다. 삼성 파운드리가 국내 팹리스 회사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 7월 삼성전자 ‘삼성 파운드리/SAFE 포럼’에서 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사장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이날 삼성전자는 최첨단 MPW 서비스 현황과 계획 등을 밝히며 국내외 팹리스 생태계 강화 방안을 공개했다. [삼성전자 제공]

문제는 삼성전자도 수요가 있어야 공급을 늘릴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 팹리스 생태계가 충분히 활성화되지 못한 상황에서 MPW 프로그램을 갑자기 늘리기에는 부담이 크다. 즉, 국내 팹리스 시장 확대가 먼저냐, 삼성 파운드리의 MPW 지원이 먼저냐, 닭과 달걀의 싸움이다.

이런 가운데 김녹원 딥엑스 대표는 “영세한 국내 팹리스 기업들에게 정책 자금을 N분의 1해서 나눠주는 것보다, 삼성 파운드리 중심으로 한 대단위 지원이 국내 시스템 반도체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방안”이라며 “그러면 삼성 파운드리의 MPW 프로그램이 더욱 파격적으로 나올 것이고, 결과적으로 팹리스 업체들에게 기회가 더 많이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도 “정책적, 경제적 지원을 통해 삼성 파운드리가 MPW 프로그램을 확대할 수 있도록 유인책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다 ‘통 큰’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아날로그 칩을 설계하는 다모아텍의 정후민 대표는 “지원금이 쪼개져 나오다보니, 장기적 관점에서 칩을 설계하고 사업을 이끌어가는 데 한계가 있다”며 “현장에서는 꾸준하고 확실한 대단위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설계에 필요한 디자인 툴, IP(지적자산), MPW 프로그램을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녹원 대표는 “실리콘밸리에서는 TSMC의 MPW 프로젝트와 시놉시스 디자인 툴을 합해 스타트업에게 무상으로 공급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며 “반면 한국에서는 이런 프로그램이 없어서 창업 후 설계 툴과 IP, 그리고 MPW 제작과 관련된 수십개 파트너사들을 모두 만나서 각각 협상해야만 딥엑스의 칩을 제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올해부터 정부와 서울대 시스템반도체 산업진흥원이 유망 스타트업을 선정해 관련 지원을 시작했다. 올해는 25개의 시스템반도체 스타트업이 선정됐는데, ▷최대 6억원의 사업화와 연구개발(R&D) 매칭 자금 ▷ARM IP 무상 제공 및 설계자동화(EDA) 툴 무상 지원 ▷삼성 파운드리 MPW 프로그램 등이 제공된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삼성전자 제공]
장기적 관점의 팹리스 지원책 요구 높아

장기적으로 한국 팹리스 생태계 육성의 근본적 한계를 해소하라는 요구도 나온다. ▷인재의 부족 해결 ▷‘히트 칩’ 육성 ▷시스템반도체 육성 단지 구축 ▷삼성시스템LSI와의 관계 재정립 등은 꾸준히 거론되는 주제들이다.

시스템반도체 설계인력의 부족은 국내 생태계의 만성적 문제로 지적된다. 단기적으로는 설계 아카데미를 구성하고, 중장기적으로 석·박사 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고대역폭메모리(HBM)과 같은 메모리 중심 칩을 제외하고, 전세계적으로 히트친 국내 시스템반도체가 없다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엔비디아가 최근 시총 1조달러(약 1300조원)를 넘어선 결정적인 계기는 ‘H100’ 등, 소위 “없어서 못 판다”는 세계 최고 수준의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있기에 가능하다는 평가다. 엔비디아와 퀄컴 등이 만드는 ‘히트 칩’이 국내에도 나올 수 있도록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연구 개발을 할 수 있는 시스템반도체 육성 클러스터에 대한 요구도 나온다. 삼성이 경기도 용인 등에 파운드리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있지만, 이는 위탁생산 거점일 뿐 ‘첨단 칩’ 설계를 위한 정책과는 다소 동 떨어졌다는 평가다. 용인과 인접한 경기도 지역에 팹리스 기반의 반도체 클러스터 클러스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대안이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삼성 시스템LSI와 국내 팹리스 업체 간의 건전한 협력관계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크다. 삼성의 경우, 파운드리 사업부와 팹리스 기능을 하는 시스템LSI사업부가 별도 법인으로 분리돼있지 않다. 때문에 국내 팹리스 관계자들 중 상당수는 “칩 설계 기술이 시스템LSI에 이전되는 것을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삼성은 두 사업이 별도로 분리돼 있다고 강조하지만, 여전히 업계에선 우려 섞인 시선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TSMC가 언제나 강조하는 게 고객(팹리스)와 경쟁하지 않는 파운드리이기 때문에 TSMC가 신뢰할만하다는 점”이라며 “삼성 팹리스 기능과 국내 팹리스의 건전한 생태계 문화가 구축된다는 인상을 줘야 국내 기업들이 더욱 더 적극적으로 삼성 파운드리와 협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jakmeen@heraldcorp.com
ra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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