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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에도 국가 출생증명 없는 대한민국 [강형원의 인사이트]
아이의 탄생후 처음으로 아빠의 손가락을 붙잡는모습 [필자 제공]

생부모의 이름이 ‘모름’으로 기록된 1978년 미국으로 입양된 아이의 입양서류 [필자 제공]

21세기에도 국가 출생증명이 없는 대한민국의 미래 주인들에게 출생증명서를 만들어줄 때가 왔다.

인류가 수만년 동안 지속적으로 존재해오며 경험해온 숱한 일 중 가장 신비롭고 특별한 경험을 꼽자면 아이들의 탄생이다.

21세기에 대한민국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화두가 있다면 계속 떨어지고 있고 기록이 존재하기 시작한 이후 바닥을 향해 가고 있는 ‘최저치 출생률’이다. 또한 역사상 최저 출생률에도 포함되지 않은 우리 땅에서 태어난 ‘그림자 아이들’, 즉 미등록 아이들은 최근 정부 통계에서 나타나듯이 수천 명에 달한다고 한다.

태어남과 동시에 평생 자신의 출생기록이 남겨지는 제도가 아닌 ‘출생등록’이라는 제도적인 결함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아이들조차도 우리는 전부 챙기지 못하고 있다.

21세기에 선진국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출생과 동시에 모든 과학의 발전에 입각한 의학적인 도움을 받으며 높은 생존율과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존중받는 엄청난 혜택을 받고 인류 역사상 가장 축복받은 시기에 태어난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동등한 인권을 갖고 있다’는 선진사상은 오늘날 인류 역사상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가장 위대한 제도인 민주주의와 자유사회의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가치관이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큰 획을 그었던 1988년 올림픽 다음 해인 1989년에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196개 나라가 채택한 인권 협약 ‘유엔 아동권리협약(UNCRC·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에 명시된 아동의 권리 8조에는 ‘정부에서는 아동의 정체성의 권리를 존중해야 된다(Article 8-Governments must respect a child’s right to their own identity)’고 명시돼 있다.

아동 정체성의 기본은 자신의 ‘생물학적인 부모(생부모)’가 누구인지 알 권리이며, 선진국에서는 모든 아동의 태어남을 증명하는 출생증명서(certificate of birth)에 생물학적인 부모의 이름과 태어난 날짜, 시간이 명시돼 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아이 중에는 일부 병원에서 만들어주는 출생증명서가 있는 아이도 있지만 그 출생증명서가 국가 발행 문서가 아닌 사적인 서류이다 보니 공식적인 효력이 없다.

한국에서는 이처럼 아이들이 탄생과 함께 정체성이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호적에 입적을 할 때 비로소 인간으로서 완성이 되는 것이기에 ‘아동 인권의 완성’이라는 관점에서 지금 다시 시급하게 검토해봐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생부모의 정체가 기록되지 않고, 생부모가 아닌 다른 이름을 친부모 이름으로도 출생등록을 하게 하는 제도는 정확하지도 않고 아동의 인권을 존중해 주지도 않는 미완성 제도다. 아이의 생모가 미혼모일 경우에는 우선 출생등록이 안 되고, 아빠의 확실한 성과 본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면 생부가 아니어도 생리학적으로 관계없는 친부 주장 아빠가 ‘인지신고’를 할 경우에는 아빠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아동의 출생등록이 가능한 복잡한 제도가 바로 우리의 현재 제도다.

대한민국 여권 사진 중에는 보정을 거쳐서 실제 모습하고 많이 다를 수도 있어 진정한 증명으로 인정하기 힘든 상황이 있는 것처럼 대한민국 출생등록 제도 또한 투명성과 정확성이 미흡하다.

대한민국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태어난 아이의 인권을 부정하는 생모가 출생등록을 거부할 경우에는 생부가 미혼부로 아이의 출생등록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복잡하고 어려운 법 규정을 백성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 훈민정음을 창제했던 세종대왕께서 아시면 크게 실망할 일 중에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을 완성시켜 주지 못하는 제도가 아직도 있다는 것일 것이다.

현시대에 맞지 않는 출생등록 제도도 문제가 심각하지만 이미 국제적인 선진 제도인 ‘국가출생증명서(National Certificate of Birth)’ 발행을 아직도 못하고 있는 IT 강국 대한민국에서는 너무나 아쉽고 이해하기조차 어렵다.

2007년 9월 미국 애틀랜타에 있는 마틴 루서 킹 목사 부부 묘지를 찾은 이철수(왼쪽) 씨와 이경원 기자 [필자 제공]

1952년 대한민국에서 성폭행을 당했던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이철수(1952~2014) 씨의 구명운동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프리 철수리’가 얼마 전 상영돼 큰 호응을 얻었다.

미국에 이민 간 부모들은 생활고로 신경 쓸 틈이 없기에 아이의 교육을 미국 교육 제도에 맡긴다. 영어를 못하는 12세 이철수는 샌프란시스코 학교 적응에 실패했다. 학교에서는 영어 못하는 것을 ‘지능 미달’로 오인해 정신병원에 보냈고, 정신병원에서 강제로 약을 투약해 검진해 보니 ‘정상’으로 판명돼 퇴원시켰다. 국가 지정 대리양육가정(foster home)에 보내진 미성년자 이철수는 가출했고, 경찰은 그를 잡아다 소년원에 입소시켰다.

억울하게 투옥돼 있으며 한국말을 잊어버렸던 사형수 이철수가 석방될 때까지 10여년이 걸렸는데, ‘이철수 구명운동’ 배후에는 미국 주류 언론에서 최초의 아시안 기자로 활약했던 이경원(95) 기자가 있었다. 이 기자의 심층 보도로 미국 전 지역 범아시아인 인권운동으로 번지면서 일본계 미국인 3세들의 헌신적인 노고와 한인 교회들이 발벗고 모은 변호기금이 있었다.

한국에서 출생증명 없이 태어나 온전한 성장 기회를 가지지 못했던 이철수는 미국의 제도적 차별 속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던 두 번째 희생을 경험했던 것이다.

1952년 출생증명이 없던 대한민국 상황은 그렇다고 쳐도 2023년 오늘날 대한민국 태생 아이들에게 아직도 출생증명을 국가에서 만들어 주지 못하는 것은 매우 미흡한 ‘아동 인권 부재’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나라의 주인이 되겠다는 의식 있고 책임감 있는 결정권자가 있어서 대한민국에서 태어나는 모든 아이가 한국 출생증명서를 갖고 평생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사는 미래를 꿈꿔본다.

bons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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