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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형주의 컬처코드-K] ‘K-콘텐츠’ 왕관의 무게
‘상견니’ [오드(AUD)리바이브콘텐츠 주식회사, CJ CGV 제공]

요즘은 누가 뭐래도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의 시대’다. 최신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시간을 내 극장까지 번거롭게 발걸음을 하지 않더라도, OTT에 동시 상영되거나 OTT 오리지널로 독점공개되는 콘텐츠를 만나는 것이 더이상 새롭거나 특별한 일이 아니다.

지난 2020년 제77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 “자막의 장벽, 그 1인치를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수상소감을 남긴 지 4년이 안되는 시간에 전 세계 영상산업의 시스템과 패러다임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야말로 ‘혁명’에 가까운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중 가장 큰 수혜자가 ‘대한민국’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넷플릭스를 통해 ‘오징어 게임’,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더 글로리’ 같은 전 세계 시청순위 1위에 빛나는 걸작 드라마들을 세계에 내놨다. K-팝과 K-무비를 넘어 K-드라마까지 그야말로 K-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세계 문화를 흔드는 큰 손이 됐다.

우리나라의 K-르네상스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2000년대 초반 드라마 ‘가을동화’, ‘겨울연가’, ‘대장금’ 그리고 ‘욘사마’와 ‘지우히메’, ‘뵨사마’라는 애칭으로 더욱 유명해진 배우 배용준, 최지우, 이병헌, 한국인 최초로 오리콘차트 1위를 정복하며 ‘아시아의 별’로 떠오른 가수 보아를 통해 ‘한류’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중국, 대만, 일본을 넘어 중동 국가에까지 떨친 명성의 역사가 길다. 이미 우리는 20여년 전부터 김구 선생의 말씀대로 작지만 강한 문화국가로서의 위용을 뽐낼 ‘본질적 재능’을 지니고 있던 것이다.

드라마와 가요로 시작된 ‘한류열풍’은 2000년대 중후반 영화분야까지 재빠르게 치고 나갔다. 그 당시 한국영화는 모 대기업으로부터 선진화된 멀티플렉스 극장 시스템이 전국적으로 도입되며 수백만 명의 관람객이 오가는 폭발적인 수요를 이뤘다. 그렇기에 한국의 영화산업은 시너지가 극대화되며 소위 말하는 프랑스 칸, 독일 베를린, 이탈리아 베니스 등으로 대변되는 ‘세계 3대 국제영화제’에서 두각을 보였고, 콧대 높은 유럽 평단의 뜨거운 호평을 받게 됐다. 2002년 칸 영화제에서 ‘취화선(임권택 감독)’이 감독상을 받았고, 같은 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오아시스(이창동 감독)’가 은사자상(감독상)과 신인배우상(문소리)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후 2004년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감독상)을 수상한 ‘사마리아(김기덕 감독)’와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쥔 ‘올드보이(박찬욱 감독)’가 기폭제가 돼 거의 매년 한국영화는 3대 국제영화제는 물론 전 세계 각국의 메이저 영화제의 경쟁, 비경쟁 부문에 공식초청, 기라성 같은 상들을 휩쓸었다.

‘한류열풍’의 시작점에서 시계를 돌려, 1970~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그때 그 시절은 한국은 물론 일본, 중국, 대만, 동남아 국가들은 ‘홍콩영화 전성시대’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성룡과 홍금보를 위시하여 영화 ‘영웅본색’ 시리즈의 배우 주윤발과 장국영, 홍콩의 ‘4대 천황’인 유덕화, 장학우, 여명, 곽부성, ‘황비홍’의 이연걸이 아시아를 사로잡았다. 여배우들의 위상도 국제적이었다. 영화 ‘천녀유혼’ 시리즈의 ‘헤로인’으로 책받침 시대를 상징한 배우 왕조현, ‘동방불패’의 임청하, ‘첨밀밀’의 장만옥, 최근 아시아 여배우 최초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양자경이 소년소녀 팬들의 우상이었다. 당시 아시아 영화산업의 최강자는 홍콩이었고, 홍콩영화 자체가 아시아를 대표하는 콘텐츠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원할 것 같던 홍콩영화계의 찬란한 영광은 기대만큼 오래가지 못했다. 홍콩을 오랜 기간 지배하던 영국이 1997년 7월 1일, 청나라 영토였던 홍콩을 중국(중화인민공화국)에 반환하게 되는 역사적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홍콩의 수많은 배우와 감독, 제작진은 이에 반기를 들고 같은 영국령인 캐나다나 호주로 떠났다. 자유민주주의 아래 활발한 활동을 해오던 영화사들은 사회주의의 그늘 속 ‘표현의 제약’으로 창작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홍콩의 영화산업은 1997년을 기점으로 불과 몇 년 만에 초라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 빈틈을 파고들었던 것이 ‘한류’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한류 열풍’은 홍콩영화의 전성기보다 질적, 양적으로 단단하고 내실을 갖췄다. 예전 홍콩영화가 완벽하게 정복하지 못했던 일본 열도마저 뒤흔들어 놓았다. 파급력까지 ‘한류’가 한 수 위였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넷플릭스를 포함한 메이저급 OTT 플랫폼에서는 국가와 인종을 초월해 지구촌 수많은 이들이 한국의 콘텐츠를 즐긴다. 어디 이뿐인가? 이제는 음악과 영상을 넘어 요리와 패션에까지 K가 붙으면 프리미엄이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전 세계 모든 이들이 한국의 문화를 사랑하며 즐기고 있는 것이다.

‘말할 수 없는 비밀’ [엔케이컨텐츠 제공]

그런데 이렇게 샴페인을 터뜨리며 마냥 환호만 할 상황은 또 아니다. 코로나 19와 함께 찾아온 ‘OTT의 비상’의 이면엔 국내 극장가의 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 OTT의 편리성을 누리는 동시에 극장 나들이를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한 일로 여기게 된 것이다. 게다가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더라도 우리나라 영화관람료는 매우 가파르게 상승, 국내 관객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킨 상황이 됐다.

이러한 때에 영상업계에서는 다소 빈약하다고 여겨지던 대만, 태국 등 주변 국가들이 도약하고 있다. 이들이 일군 문화 콘텐츠가 갖춘 뛰어난 수준과 눈부신 발전상을 결코 간과해선 안된다.

지난 2019년 대만 멜로 드라마의 역사를 다시 쓴 배우 허광한, 가가연 주연의 ‘상견니’는 방영 당시 대만 방송 시청률 1위를 넘어 중국, 일본, 한국에까지 ‘상친자’라는 폐인들을 양산했다. 외전 격인 영화판을 아시아 전역에 개봉해 엄청난 흥행 수익을 거뒀고, 허광한을 ‘차세대 아시아 프린스’ 자리에 올려놓았다. 최근 한국의 대기업 화장품 브랜드는 그를 대만 배우 사상 역대 최초로 메인모델로 기용했다. 국내 드라마 제작사는 그를 비중 있는 주역 중 하나로 드라마에 캐스팅 했다.

사실 대만의 영상 산업은 자국의 경제상황과 맞물려 오랜 기간 침체기를 겪었다. 인구 대비 과도하게 많은 방송사와 채널이 존재, ‘제 살 깎아먹기(?)’라는 오명도 썼다. 일찌감치 ‘레드오션’이었던 업계 사정으로 인해 연기파 배우들과 스타들은 중국 대륙으로 진출해 활로를 모색했다. 이러한 비상상황은 밀레니엄을 넘어서까지 한동안 계속 됐다. 결국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대만 영화계 종사자들은 자국의 영상산업을 수수방관 해서는 안된다는 위기의식으로 마음을 합치며 ‘각성’하기 시작했다. 영화관련법 개정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고, 영화산업 발전을 위한 세미나가 매년 수십여 회씩 민간의 영역에서 들불처럼 일어났다. 대만 정부도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초월해 여야를 가릴 것 없이 하나돼 정부 차원의 지원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절치부심한 대만의 영상산업이 성과를 낸 것은 지난 2007년이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이 기록적인 장기흥행이라는 성취를 썼고, 2012년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한국에도 ‘왕대륙 열풍’을 일으킨 2016년 ‘나의 소녀시대’ 등 ‘저예산 고효율’을 표방한 히트작을 내기 시작했다. 대만의 영상 콘텐츠는 자신들의 역사적 특징(대만은 일제강점기를 겪었고, 중국 본토와 양안관계의 정점에 있다)과 ‘문화적 보편성’을 바탕으로 했다. 특히 ‘청춘’과 ‘추억’ 키워드를 무기 삼은 ‘학원 로맨스’ 물에 강점을 보이며 수많은 히트작을 내기 시작했다.

‘나의 소녀시대’ [오드 제공]

그러한 노하우가 쌓여 공급과 수요가 ‘드라마틱’하게 맞물렸다. ‘화룡점정’을 찍은 작품이 바로 ‘상견니’다. ‘드라마판’과 ‘영화판’ 모두가 제작비 대비 많게는 수십 배의 흥행 수익을 거둬들이며 그야말로 ‘초대박’을 쳤다.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였던 한국 드라마 ‘너의 시간속으로’가 ‘상견니’의 리메이크작이다. 어찌보면 대만은 치열하고 지혜롭게 자신들이 가진 장점을 찾아냈고, 그것을 극대화하며 ‘성공’을 이뤄낸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대만 영상 업계의 현재를 이끄는 주역들의 성장과정에 K-콘텐츠가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상견니’의 감독과 작가들은 “우리의 학창시절에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가 크나큰 부분을 차지했다”고 했고, 주연배우 허광한은 남우주연상 수상과 아이유와의 촬영 중에 하나를 고르라는 질문에 ‘아이유와의 영화출연’을 선택했다. 여주인공 가가연은 배우 공유의 팬이다.

우리 영상업계는 현재 세계 영상산업의 ‘트렌드세터’로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아시아를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의 ‘모범사례’로 떠오르고 있다. 그렇기에 흥행만큼 중요한 것이 우리나라 영상산업 시스템의 견고한 내적 성장이다. 나아가 이제는 중구난방식 시도가 아닌 선택과 집중도 필요한 시기가 도래했다고 본다. 더불어 진솔한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과 ‘방향성’을 얻어낼 수 있다.

이를 위해 ‘민간의 영역’인 문화에 정부 차원의 거시적인 안목, ‘지원은 하되 간섭하진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에 입각한 장기적 지원 정책도 절실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K-르네상스 시대에서 ‘왕관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선 그저 축배만 들어서는 안된다. 지금은 자국 영상산업의 ‘내면의 거울’도 함께 목도해 ‘지속가능성’을 바라봐야 할 때다.

bons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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