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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신진서의 마법 ‘1.6% 우승’...정작 바둑계는 한없는 위축

현존 바둑 프로 중 인공지능(AI)과 가장 근접한 기력을 펼친다며 ‘신공지능’이라 불리는 ‘신진서의 마법’이 연일 화제다. 신진서 9단은 지난 23일 상하이에서 열린 제25회 농심신라면배 최종국에서 중국의 마지막 주자 구쯔하오 9단을 꺾고 한국의 4년 연속 우승을 견인했다. 지금도 회자되는 2005년 이창호 프로의 ‘상하이 대첩’ 이상의 쾌거다. 신진서 우승 이후 1주일이 지났는데도 언론이 계속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근황을 전하는 것을 보면 감동의 여운이 얼마나 진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사실 신진서의 농심배 우승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농심배는 한·중·일 3국 다섯명씩 선수가 출전해 ‘서바이벌 게임’으로 진행되며 최종 살아남는 곳이 우승국이 된다. 한국의 설현준·변상일·원성진·박정환 선수는 일찌감치 탈락했고 마지막 남은 선수가 신진서였다. 일본은 이야마 유타 9단이 홀로 생존한 가운데 중국은 자오천위·커제·딩하오·구쯔하오 9단 등 4명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숫자 상 이변이 없는 한 세계 최고수 4명이나 건재한 중국의 우승이 유력했다. 전문가들이 예측한 신진서 우승 확률은 1.6%였다.

이같은 상황에서 혈혈단신 중국에 건너가 초일류 다섯명을 연일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렸으니 팬들의 열광은 폭발적이었다. K바둑 위상을 만천하에 떨친 것으로, 바둑계 새 레전드(전설)가 탄생한 것이다. 축하하고 또 축하할 일이다. 다만 기적같은 우승 기쁨을 잠시 접고 냉철하게 들여다봐야 할 구석이 있다. ‘신진서 보유국’이라고 떳떳하게 자랑할만큼 우리 바둑문화가 활성화돼 있는지 반문해봐야 한다. 한국 바둑팬은 920만명 정도다. ‘응답하라 1988’에서의 ‘택이’ 캐릭터에서 엿볼수 있듯이 2000년대 이전의 바둑 인기는 대단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바둑은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그치고 있다. 바둑을 배우려는 이도 급감했다. 바둑 인력 배출을 기치로 최초로 바둑학과가 신설된 명지대에서 과 폐기 문제가 거론된 것은 바둑계의 위축을 상징한다.

MZ에 바둑문화를 퍼뜨리는데 실패한 바둑계에 1차적 책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홀대도 작용했다. 바둑은 진흥법이 제정된 스포츠 종목으로, 정부 지원이 법률로 명시돼 있다. 바둑계는 지난해까지 국가 지원을 받아 왔다. 하지만 올해는 한국기원에 대한 예산 지원이 일부 줄었고 대한바둑협회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이 며칠전 신진서 우승 축하를 하는 자리에서 “이번 우승은 청소년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으로, 바둑 저변 확대 방안을 논의해가자”고 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K바둑 성과를 인정하고 육성해가는 것 또한 국가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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