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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택에서 즐기는 실내악…“실내악이 뭐냐고 19년째 듣지만, 짜릿한 쾌감 최고”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23일 개막
대니 구·박상욱 등 60명 참여
윤보선 고택에서 열린 '2024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기자회견 [연합]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를 19년 째 해오며 실내악이 뭐냐는 질문을 19년째 듣고 있어요. (웃음)”

개막을 앞둔 국내 최장수 실내악 음악 축제인 서울스프링페스티벌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많게는 10명, 적게는 2~3명. 소규모로 연주되는 기악 합주곡을 실내악이라고 말한다. 실내악은 수 백년의 클래식 음악 역사 안에서도 극복하지 못한 ‘소외 장르’다.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실내악 장인’ 중 한 명인 비올리스트 김상진은 “대중이 졸아하는 것은 성악과 기악, 기악 중에서도 심포니이고, 실내악은 음악가들이 좋아하는 장르로 음악가들의 음악적 만족을 위한 장르”라고 했다.

실내악은 진입 장벽이 높다. 클래식 음악계 관계자는 “실내악은 스타 연주자들의 화려한 비르투오소를 볼 수 있는 작품도 아니고, 오케스트라처럼 웅장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음악이 아니다 보니 클래식 초심자들은 빠지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에 실내악 관객은 클래식 고수로 분류되기도 한다. 김상진은 “어느 나라에 가도 실내악 청중은 적은데 클래식 음악 관객 전체로 보면 이 적은 실내악 청중이 엑기스”라고 했다.

무자극의 실내악 페스티벌을 19년 째 이어온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이하 SSF, 4월 23일~5월 5일)가 올해도 막을 올린다. SSF는 ‘실내악은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실내악의 지평을 낮춘 국내 대표 음악 축제다. 이 축제는 매해 국내외에서 50~60명에 달하는 음악가들이 찾아와 고택, 갤러리, 소규모 공연장 등 신선한 프로그램으로 관객과 만나왔다.

'2024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기자회견에 참석한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 [연합]

음악가들이 실내악을 사랑하는 것은 동료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동반 성장’을 하기 때문이다. 2020년부터 이 페스티벌에 함께 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는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윤보선 고택에서 기자들과 만나 “실내악을 하면서 많이 배우게 되고, ‘이게 클래식 음악의 중심이었지’, ‘내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가 이런 거였지’라는 초심을 돌아보게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솔리스트로 활동하면 어두운 방에서 (혼자) 계속 연습해야 하고 스스로를 지적하며 발전해 나가야 하는 우울한 면이 있다”며 “실내악은 서로 의지하면서 합주하는 매력이 있다”고 했다.

실내악의 매력은 많지만, 음악가들에게도 쉬운 장르는 아니다. 실내악의 핵심은 서로의 이야기를 잘 듣고 조화로운 음악을 만들어나가는 것. 이 축제를 이끌고 있는 강동석 예술감독(바이올리니스트)은 “아무리 뛰어난 솔리스트라도 실내악에 적응을 못 하는 경우도 있다”며 “솔로는 열심히 연습해서 자기 것만 하면 되지만, 실내악은 다른 사람과 유연하게 적응해야 한다. 어렵기도 하지만 그만큼 재밌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내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음악가는 좋은 음악가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대니 구는 실내악을 통해 배움의 기쁨이 크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제는 대학교에 다니거나 레슨을 그렇게(주기적으로) 받는 게 아니다 보니 가면 갈수록 사람들의 음악적인 의견을 들을 기회들이 적다”며 “실내악을 하면 배우는 것도 많고, 마치 사우나에 가서 땀을 빼는 것처럼 클렌징하는 느낌도 받는다”고 말했다.

피아노 듀오 신박듀오의 멤버인 박상욱 역시 “솔리스트의 꿈을 향해 외로운 싸움을 하던 사람들끼리 모여 하나의 음악을 만들 때 굉장한 쾌감이 찾아온다”며 “피아니스트는 혼자 무대를 헤쳐가야 해서 더 외로운데, 듀오로 10년 넘게 활동하다 보니 음악적인 영혼의 파트너와 함께 한다는 것을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윤보선 고택에서 열린 '2024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기자회견 [연합]

‘올 인 더 패밀리’(All in the Family)라는 주제로 꾸며질 올해 SSF엔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와 피아니스트 박상욱, 앙상블 노부스 콰르텟, 아벨 콰르텟 등 60명의 음악가가 참여한다. 공연은 세종문화회관 세종체임버홀,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아트스페이스3, 윤보선 고택 등에서 총 14차례 열린다.

축제의 주제에 대해 강 감독은 “음악가들의 음악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가족을 다양하게 찾아봤다”며 “현악4중주 그룹은 친가족보다도 시간을 더 많이 보내는 등 여러 종류의 가족이 많다”고 밝혔다. 박상욱 역시 “올해 주제와 실내악이 잘 맞는다”며 “남남인데도 가족 같은 끈끈한 사이들이 있다. 낯섦과 불편을 견뎌내고 하나의 예술로 승화했을 때의 즐거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축제 기간 동안 이어질 프로그램의 면면이 알차고 이색적이다. ‘가족’의 의미를 담아 다양한 주제로 매일의 음악회를 구성했다. 같은 국적과 민족적 배경을 가진 작곡가들, 시대를 앞선 선구자적 작곡가, 19세기 여성 작곡가, 친불파 작곡가, 유대인 작곡가로 분류하자 기존의 음악회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여러 각도에서 해석한 공연이 열린다.

특히 조영찬-이화윤, 무히딘 뒤뤼올루-마리 할린크 등 부부 음악가들의 무대 ‘나보다 나은 반쪽’, 베토벤, 브람스 등 조국을 떠나 타국에 정착한 작곡가들의 곡을 들려주는 공연 ‘방랑자’, 2024년이 기념의 해인 쇼팽, 푸치니, 슈트라우스, 스메타나의 곡을 들려줄 고택 음악회는 이번 축제의 백미다.

폐막 공연은 ‘비극의 피날레’라는 타이틀로 이목을 끈다. 그라나도스, 무소륵스키, 도니체티 등 비극적인 마지막을 맞이한 작곡가들의 곡을 들려준다.

소외 장르를 전면으로 내세운 축제를 20년 가까이 이어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2~3년 전 예산이 확충되는 해외 페스티벌과 달리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는 개막 한 달 전이나 되야 예산이 정해진다. 재정적 어려움에도 19년 간 이 축제를 이어온 것은 기적에 가깝다. 참여한 연주자들이 “SSF를 지속할 수 있는 것은 강동석 감독 덕분”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강 감독은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는 모험 같은 페스티벌”이라며 “매년 조금씩 변화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해마다 축제와 실내악에 대한 관심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가 생겨난 이후 각 지역이나 단체를 대표하는 실내악 페스티벌이 등장했다. 강 감독은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실내악 축제가 없었는데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졌고, 실내악 연주가 많이 늘었다는 점에서 우리 축제가 어떤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며 “다만 변화와 마음이 함께 가진 않는다. 외국처럼 축제 몇 달 전 표가 매진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는 아쉬움도 전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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