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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기차 불 나면 누구 책임?…중고매물 쏟아지는데 소비자 배상 우려 급증 [여車저車]
전기차 차주들 “배상 책임 문제가 화재보다 더 걱정”
전기차 처분 움직임 거세…매물 늘고 가격 하락세
중고차 업계 “수요 둔화 상황 고려해 적정 재고 유지”

8일 인천 서구 한 공업사에서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벤츠 등 관계자들이 지난 1일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전기차에 대한 2차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지윤 기자] 최근 인천 한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 사고 여파로 '전기차 포비아(공포증)'가 확산하는 가운데 사고 발생 이후 뒤따를 '배상 책임 소재'에 대한 전기차 소유주들의 우려가 덩달아 커지는 모양새다. 화재 시 책임 소재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면, 전기차 중고 매물이 쏟아지는 등 전기차 산업 전체가 침체할 수 있다는 우려섞인 전망도 나온다.

14일 자동차 조사업체 컨슈머인사이트가 아파트에 거주하는 전기차 보유자의 현재 우려 요소를 조사한 결과 ‘화재 사고에 대한 배상 책임 소재’가 60%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번 조사는 아파트에 거주하는 전기차 보유자 1238명을 대상으로 이뤄졌으며, 우려 사항 12개를 제시하고 가장 걱정되는 3가지를 고르는 복수응답 방식으로 이뤄졌다.

특히 배상 책임 소재에 대한 우려가 화재 발생 불안감(51%)보다 9%포인트나 높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컨슈머인사이트는 설명했다. 화재 발생 자체보다 발생 후 책임 논란이 더 큰 걱정인 셈이다. 이어 ‘전기차 품질·안전에 대한 불신’(38%), ‘주변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30%) 등이 뒤를 이었다.

책임 소재에 대한 논란은 자동차·배터리 제조사, 아파트 관리자, 보험 회사 등을 넘어 전기차 소유자로 번지고 있다. 특히 지난 1일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벤츠 전기차 화재의 경우 차량 87대가 불에 타고 793대가 그을리는 등 피해가 커 막대한 복구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피해액이 최소 100억원에 달할 것이란 추산도 나온다.

손해보험 업계에 따르면 이번 화재로 약 600대의 피해 차량이 자기차량손해담보(자차보험) 처리 신청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보험사들은 먼저 피해 차주들에게 보험금을 준 뒤 향후 국과수 감정 결과에 따라 차량·배터리 제조사, 차주, 아파트 관리사무소 등 책임 소재가 정해지면 구상권 청구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화재 사고를 일으킨 메르세데스-벤츠 차량은 EQE 350 모델로, 중국 파라시스가 생산한 삼원계 배터리를 탑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만약 벤츠 전기차의 결함이나 배터리 문제로 화재 원인이 밝혀진다면 차량 제조사나 배터리 업체가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될 가능성이 크지만, 전기차 특성상 외부 충격, 과충전 등 여러 요인으로 원인 규명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차주들의 우려가 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책임 소재에 대한 우려 등으로 소비자들이 전기차를 외면하게 될 경우 전기차 시장을 비롯해 배터리, 소재까지 관련 산업 전반이 침체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이번 화재 사건 이후 중고차 플랫폼에서는 전기차를 처분하려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직영 중고차 플랫폼 케이카에 따르면 전기차 차량 화재가 발생한 지난 1일 이후 7일간 ‘내차 팔기 홈 서비스’에 등록된 전기차 접수량은 직전 주(지난달 25~31일) 대비 184%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접수된 중고 전기차 매물 중 화재가 난 EQ 시리즈 모델이 차지하는 비율은 10%로, 직전 주(0건)보다 늘었다.

엔카닷컴도 지난 1~8일 접수된 ‘내 차 팔기’ 매물 중 EQE 모델(EQE V295·EQE SUV X294)은 총 13대로, 지난달 한 달간 접수된 물량(5대)을 크게 뛰어넘었다고 밝혔다.

전기차 가격도 떨어지는 분위기다. 엔카닷컴의 ‘8월 자동차 시세’에 따르면 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 EV6의 중고차 가격은 전월 대비 각각 1.97%, 1.11% 하락했다. 특히 테슬라 모델3와 모델Y는 각각 2.61%, 3.36%의 평균보다 높은 가격 하락 폭을 보였다.

엔카닷컴은 “휴가철인 8월은 가계 지출이 늘고 폭염이 더해져 중고차 비수기로 시세가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면서도 “특히 근래 전기차 시장 수요 둔화(캐즘)로 시세가 3개월 연속 하락했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이번 화재가 중고 전기차 시세 하락에 더욱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중고차 업계는 현재 수요 둔화 상황을 고려해 적정 수준의 재고를 유지하는 데 중점을 둘 계획이다. 한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이번 화재로 전기차에 대한 인식이 나빠진 상황에서 가격이 저렴하다고 무조건 중고 전기차를 매입해 물건을 쌓아둘 수는 없다”며 “이번 사태를 전기차 구매의 기회로 보는 일부 소비자들이 만족할 만한 가격 때가 형성될 때까지 당분간 시세 하락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jiy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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